[회고록] 2022년 회고록

2022년 회고록

21년 8월 삼성전자 입사 후기를 적었던 내가 어느새 22년 회고록을 적고있다. 그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SVP 동기들과는 여름 휴가를 다녀왔고, 대학 선배, 후배, 동기들과 축구하며 나이가 들었음을 느끼며 웃었고, 동기들과는 동탄의 맛집 탐방을, 함께 면접 준비로 고생했던 현정 누나와 뉴식이 형과는 송년회를 보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좋은 기억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22년은 사회인이라는 제목을 달고 오롯이 한 해를 보낸 첫 해라 그런지, 22년을 기억할 때면 밀도있게 꽉 차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모든 경험이 새로웠던 한 해였다. 21년 하반기에는 사내 시스템 활용 방법에 익숙해지는데 바빴다면, 22년에는 과제의 기획에서부터 수행, 검증을 거쳐 완료에 까지 이르는 하나의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던 귀중한 한 해였다.

그 중 강렬했던 몇몇 경험들은 일기로 적어두곤 했는데, 자체 필터링을 거쳐, 얻었던 얄팍한 깨달음을 적어보려고 한다. 미래에 흠칫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다시 돌아와 이 글을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눈 덮인 들판을… 일단 걸어라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말라는 말이 있다. 우리 교수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시던 글이었는데, 조금 응용해 보았다. 갈 길이 명확하면, 흐트러지지 않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걸을 용기조차 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다. 걸어야지.

많은 S직군 입사자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하나같이 느끼는 벽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개발을 하지. 집에 갈래. 그러나 자욱한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있는 법. 두드리다 보면 열리는 법. 언제나 그렇듯 방법은 있었다. 그러나, 다만 내가 놀랐던 것은, 내가 들판을 걸어가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

입사 초와는 달리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겨, 새롭게 배운 일들은 하나하나 팀 공유 문서에 정리하고 있다. 언젠가 들어오게 될 S직군 후배님(?)들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언젠가 사외 서버에 접속해야 할 운영 담당자를 위해, 언젠가 빌드 파이프라인 구축은 해야하는데 표준 프로세스는 무엇인지 모를 당신을 위해.

문서 작성이 끝나고 저장을 누르며 1년에 100시간 정도를 아껴주면, 나는 회사에 100만원 정도 기여한 셈이 되겠군, 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연말이 된 지금, 좋아요는 2개. 굉장히 건방졌네.

신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정체성

나는 지금까지 엔지니어보다는 신입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일했던 것 같다. 내 의견을 들어주겠어? 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다. 내 스타일 아닌데.

앞으로는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이 들어왔을 때,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용기. 엔지니어로서 더 나은 대안을 떠올릴 수 있는 창의성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의사표현력을 갖춰야 겠다고 다짐했다.

현업 요구사항 수용은 곧 개발/운영팀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의 반대는 그들에게 일하기 싫어서 하는 핑계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 성숙도와 적용 난이도에 따라 요청하신 기간 안에는 구축 불가합니다라는 통보를 들은 요청자는 안 된다는 말 하려고 일주일이나 기다리게 한 건가? 그럼 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전달받은 검토 내역을 읽고 수긍하는 팀도 있지만, 내가 안 된다고 말하면 나의 업무 리더에게 메일을 보내고, 업무 리더가 거절하면, 그 위 부서장을 수신처에 추가해 다시 메일을 보내는 팀도 있다. 두 번쯤 메시지가 오고 가면, 안 되는 걸 되게 하기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

타의로 시작한 과제는 급하기 마련이다. 급하게 시작한 과제는 부작용이 많다. 과제 구체화를 위한 컨설팅. 시간이 없다. 패스. 일단 개발자 투입. 개발환경 구축에 일주일이 걸린다.

타 시스템과 연계(Interface)가 필요함을 발견. 인터페이스 대상 시스템과 협의체 구성. 통보받은 시스템 담당자들은 다들 얼굴에 물음표를 띄며 연계가 필요하면 적어도 한 달 전에는 미리 얘기를 하셨어야 하는데, 저희도 개선 건이 많아서 대응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라는 답변.

시스템을 올릴 자원이 필요한데, 1년 전 자원 요청서에는 작성되어있지 않다. 몰랐으니까. 이런 과제를 시작할지 몰랐으니까. 이런 요구사항이 들어올지 몰랐으니까.

첫 PM(Project Manager)

처음으로 과제 PM란에 내 이름이 올라갔고, 작지만 사내외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도 오픈했다. 과제를 수행하며, 우리 회사 유명 인사인 J님의 세미나 한 구절이 계속 생각났다. 대충 아래와 같은 논조였던 것 같다.

PM은 항공기 기장과 비슷하다. 처음에 잘 띄우면 비행기는 알아서 잘 가니, 중간중간 긴급 상황에 컨트롤 해주고, 안전하게 착륙 잘 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비행은 비행기와 자율항법장치에 맡기면 된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이착륙을 매끄럽게 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잘 확인하는 것이 PM의 역할이다.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비유를 할 수 있었을까. 이번 과제는 SDS없이 진행한 과제였지만, 오히려 이게 나에겐 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직계약 한 업체의 PM님께서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Attitude를 가지고 일해야 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의 노하우를 속속들이 배웠다.

이전에 PM의 역량은 아키텍처 설계, 기술 스택 결정과 같은 Tech-oriented Area에 국한된다고 생각했다. 막상 경험해보니, 이것들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역량이었다. 여기에 더해 현업 요구사항을 이해할 수 있는 도메인 지식과 더 나은 해결책을 납득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는 의사전달력, 실력있는 개발자를 유치하는 소싱 능력, 각 회사가 요구하는 과제 산출물 작성까지. 이 모든 것들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PM이었다.

다시 한 번 PM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다.

모른다는 건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저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진 않는다. 특히 더 이상 신입인 아닌 나에게 더 이상 모른다는 말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직군이라는 Identity, 원래 하던 일, 소스 레벨 개선은 내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 이런 관성에 갇혀 내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에 모른다라는 대답을 거리낌 없이 뱉어내는 부류가 있다. 무지를, 자신의 Working Attitude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운영자는 개발자와 다르다. 비즈니스 로직부터 사용자 요구사항 변화 파악, 시스템 인프라부터 소스코드 전반에 대한 구성까지 다양한 영역을 넓게 알고 있어야 한다. 왜? 모든 이슈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1선이기 때문이다.

소스코드를 모르는 운영 담당자는 반쪽짜리 운영을 하고 있다. 특히 내가 결정을 수행하고 기술적 오너십을 가지고 있다면, 모른다는 말이 쉽게 나오면 안 된다. 이제부터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것이다. 23년 나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적어도 나의 무지를 모른다는 대답과 웃음으로 넘기는 비겁한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Welcome 2023

올 해 목표는 이 딱딱한 제조 회사에 개발문화, 개발역량 성장시키기를 컨셉으로 잡아보려고 한다. 말은 거창하지만, 돈 쓰는 재미에 무뎌졌던 필드 감각을 살리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자는 다짐이다.

춤을 싫어하는 사람 손을 붙잡고 춤추자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춤을 좋아하는지는 물어봐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지식의 불균형은 의사소통의 장애 요인 중 하나다. 내가 과제 수행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 하면, 요구사항을 백날 들어봐야 이해할 수 없다. 반대로 상대가 소프트웨어 지식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개발방법론을 제창해도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일단 이 지식의 불균형을 가까운 곳에서 부터 풀어가보려고 한다. 혼자하는 고민은 외롭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하는 고민이 어떤 것인지 대강이나마 이해해 줄 수 있을 때까지, 주변 동료들에게 기초 기술 전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목표는 글쓰기 모임을 성황리에 끝내보고 싶다는 것이다. 컴투스, 카카오, CJ 현직자들과 함께 기술 관련 글쓰기 모임을 2월부터 시작하게 됐다. 다양한 고민들을 느껴보고, 함께 대화하며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Updated:

Leave a comment